매년 10월이 되면 전세계인의 시선과 관심은 노벨상 수상자 선정 소식에 쏠리게 마련이죠.
노벨상은 지구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학자, 문학가, 사회운동가 등 개인은 물론이고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수상자 명단에 자신 또는 자국민이 선정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죠.
노벨상은 단순한 상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수상자 선정 과정이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집니다.
노벨상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고, 상에 얽힌 재미난 뒷 이야기를 정리해볼게요.

노벨상의 탄생은 한 사람의 깊은 고민과 유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96)'이라는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기업가 덕분이죠.
노벨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기초공학 및 화학을 공부했어요. 이후 스웨덴으로 돌아와 폭발성이 강한 니트로 글리세린에 관한 여러 실험 끝에 1867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죠.
다이너마이트는 굴착공사, 철도 및 도로건설에 필요한 발파에 사용되며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어요.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과 국제 특허(영국 1867년, 미국 1868년), 산업 각 분야 응용은 노벨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줬죠. 그러나 이 기술이 전쟁과 파괴에 사용되는 것을 보고 깊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노벨은 사망 1년 전인 1895년에 전 재산을 헌납하면서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학 또는 의학, 평화 등 5개 부문에 걸쳐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매년 상과 상금을 수여하라는 유언장을 남겼죠.
노벨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기관들이 협력해 노벨상 재단을 설립했고, 1901년 첫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어요.
노벨의 유언처럼 초기에는 △문학상 △화학상 △물리학상 △생리학 및 의학상 △평화상 등 5개 부문의 수상자를 뽑아 시상했어요. 그러다가 스웨덴 중앙은행이 추가로 제정한 △경제학상을 1969년부터 시상하면서 노벨상은 총 6개 부문으로 늘어났어요.

노벨상 6개 부문의 수상자를 선정하고 심사하는 기관은 부문별로 조금씩 달라요.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 아카데미(The Swedish Academy), 노벨 화학상·물리학상·경제학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은 카롤린스카연구소(The Karolinska Institute),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 노벨위원회에서 주관해 심사하고 상을 수여합니다.

노벨이 태어나고 사망한 나라는 스웨덴이예요. 때문에 노벨 사후 제정된 노벨상의 심사 및 수여기관 역시 스웨덴의 기관이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오늘날 노벨상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기관이 나눠 심사하고 시상합니다.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 때문이죠. 노르웨이는 1814년부터 1905년까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어요. 노벨이 1895년 유서를 작성하고, 1900년 노벨재단이 설립되던 당시 두 나라는 사실상 스웨덴 연합국가으로 존재했지만 1905년 스웨덴과 노르웨이로 분리됐거든요.
노벨상은 개인에게만 주는 것이 원칙이예요. 하지만 노벨 평화상만은 예외예요. 개인이 아닌 단체에도 수여할 수 있도록 했죠. 또한 사망한 사람은 수상 후보자로 지명하지 않는 것도 원칙입니다. 다만 수상자로 지명될 당시에는 살아있었지만 시상식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법과 절차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요. 노벨상 후보에 대한 심사과정부터 최종 선정까지 모든 과정이 50년간 비밀에 부쳐진다고 할만큼 엄격히 통제되고 있죠.
후일담을 모아 그 과정을 추정하다보니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해요. 노벨상 부문별로 약 1000명씩 총 6000여명의 심사위원단으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사위원단이 약 3000명이라는 설도 있고, 그보다 적은 약 2000명이라는 설도 있어요.

매년 9~10월 이들에게 추천권 서한을 보낸 후 다음 해 1월 말일 전까지 후보추천서를 받아요. 추천된 후보를 추려보면 여러 추천자들이 같은 이름을 후보로 추천하는 경우도 있고, 기준에 맞지 않는 대상을 지워나가다 보면 250~300명 수준으로 압축된다는군요.
압축된 후보자들의 연구성과를 전문가 집단이 평가해 극소수로 다시 압축하고, 각 부문 심사위원회의 과반수 투표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죠.
변수도 있어요. 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선정해 올린 후보가 왕립 아카데미에서 불가피한 이유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누가 이 경우에 해당됐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후보와 선정절차 모두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수상자가 결정되고 나면 번복할 수는 없답니다.
수상자는 매년 10월 초 발표되며, 12월 10일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에 맞춰 시상식이 열립니다.

마침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누리집에 노벨상 심사절차를 그림으로 요약해 정리한 것이 있어서 여기에 첨부할 게요. 세부 수치는 좀 다를 수 있지만 노벨상 수상자 선정 절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참고자료랍니다.
◇ 노벨상 수상자의 모국어로 수상자를 소개한다?!
매년 12월 10일에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에서 수상자를 소개할 때 수상자의 모국어로 소개하는 것이 공식적인 원칙은 아니지만, 관례적으로 마지막 호명 문장을 수상자의 모국어로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이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수상자가 태어난 나라의 영광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2024년 대한민국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때도 한국어 호명을 기대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호명은 영어로 이뤄졌어요. 이유는 자칫 어색한 한국어 발음이 시상식의 집중력과 무게감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하네요.
다만 수상식 이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는 조금 서툴긴 했지만 한국어가 울려 퍼졌어요. 한 스웨덴 대학생이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 차례를 알리면서 한국어로 한강 작가를 소개한 것이죠.
◇ 노벨상에 수학상은 없다
노벨상 부문에 수학상은 없어요. 노벨의 유언에 따라 문학, 화학, 물리학, 생리학 또는 의학, 평화 등 5개 부문만을 정했기 때문이죠. 훗날 그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스웨덴 중앙은행이 별도 기금을 마련해 노벨 경제학상을 신설하긴 했지만 학문적 가치가 높은 수학상은 여전히 노벨상에 포함되지 않았죠.
대신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이 있어요. 캐나다의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을 기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40세 미만의 수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상이죠. 또 다른 유명한 수학계의 상으로는 2003년부터 노르웨이 왕실이 수여하는 아벨상이 있어요.
◇ 노벨상을 거부한 사람도 있다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거나 시상식에 불참한 사례는 총 11건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중 일부는 정치적 압력이나 외부 강제에 의해 수상을 포기한 경우이고, 일부는 자발적인 거부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장 폴 사르트르(1964, 문학상) : 철학적 신념에 따라 모든 공식적인 영예를 거부하며 수상을 거절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 문학상) : 소련 정부의 강압으로 인해 수상 거부 △리하르트 쿤, 아돌프 부테난트, 게르하르트 도마크(1938~1939, 과학 분야) : 나치 독일의 포고령으로 인해 수상 불가 △르득토(1973, 평화상) : 베트남 정부의 반대로 수상 거부 △류샤오보(2010, 평화상) : 중국 정부의 반대로 시상식 불참 등이죠.
이처럼 수상 거부는 개인의 철학적 신념, 정치적 상황 또는 국가의 압력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했습니다.
◇ 한 집안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5명씩이나!
부부·부자·형제 등이 노벨상을 받은 경우는 모두 11가족이예요. 이 가운데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집안은 2대에 걸쳐 노벨상을 5개나 수상한 마리 퀴리 일가입니다. 마리 퀴리는 1903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프랑스 물리학자인 앙투안 앙리 베크렐과 함께 방사선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1911년에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어요. 이후 1935년에는 장녀인 이렌 졸리오 퀴리가 남편인 장 프레데리크 졸리오와 함께 인공방사능 발견 등으로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밖에 영국 물리학자 조지 톰슨은 아버지(J. J. 톰슨, 1906년 물리학상)의 연구 결과를 뒤집은 성과로 1937년 물리학상을 수상했어요.
2006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로저 콘버그 교수가 195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아버지 아서 콘버그에 이어 화학상을 받기도 했죠.
위 내용은 시사상식사전을 토대로 제작한 네이버 지식백과의 내용일부를 참조했습니다.
◇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문학가가 아닌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례가 있어요. 바로 201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가수 밥 딜런(Bob Dylan)입니다.
'위대한 미국 가사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공로'로 수상자에 선정됐죠.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대중음악인으로, 문학의 범위를 확장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밥 딜런의 가사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시적 언어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인종차별, 전쟁, 자유, 시대정신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많아요. 대표곡으로는 'Blowin' in the Wind' 'The Times They Are A-Changin' 등이 있죠.
그의 수상은 문학계와 음악계 모두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노래가사도 문학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학의 정의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어요. '2020년 노벨평화상 김대중 대통령' '2024년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 등 2명이죠.
다음은 누구일까요?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최정훈 기자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