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단보도를 다 건너지도 않았는데 녹색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면 어쩌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하죠.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녹색신호등의 남은 시간을 표시해주자”였죠.
지금 웬만한 횡단보도 신호등에는 녹색신호등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숫자등이 함께 달려 있는 이유죠. 녹색신호등 잔여시간이 4~5초 정도로 촉박하면, 무리해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여유가 생겼죠.
그렇다면 이 아이디어를 교차로(사거리) 자동차용 신호등에도 적용해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벌써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서 '실시간 신호정보 내비게이션 제공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작년부터이 아이디어를 실천하고 있어요.
'실시간 신호정보 제공 서비스'를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면 '교차로 신호 상태와 다음 신호 변경까지 남은 시간을 운전자가 미리 알고 판단할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화면에 표시해주는 서비스'예요.
'황색신호 딜레마존'에 대한 문제가 끊이질 않자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정책과제'로 채택해 몇몇 도시에 시범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여기서 '딜레마존'이란 녹색신호가 종료되는 순간 정지선에 너무 가까워서 안전하게 정지할 수도 없고 교차로를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도 없는 구간을 칭해요.
그런데 이 서비스에 대해 갑론을박(甲論乙駁 : 여러 사람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상대편의 주장을 반박함)이 벌어지고 있어요.
“신호등의 남은 시간을 미리 알 수 있어 사고 위험이 줄었다”는 쪽과 “교차로를 무리해서 건너려다 오히려 교통사고가 늘었다”는 쪽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게 된 거죠.
신호등의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실시간 신호정보 제공 서비스'는 우리들에게 과연 득(得)일까요 실(失)일까요?

강릉시가 도시 내 모든 교차로에서 '실시간 신호정보 내비게이션 제공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어요. 교차로 전부에 이 서비스를 적용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강릉시가 유일하니 가장 앞서가고 있는 거죠.
강릉시는 2023년 11월부터 카카오내비에 실시간 신호정보 서비스를 적용했어요. 전국 최초였죠. 2025년 3월부터는 티맵, 4월부터는 현대자동차 블루링크와 기아자동차 커넥트서비스에도 적용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해 왔어요.
교차로 신호등의 현재 색깔과 색깔 바뀌기까지의 남은 시간을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실시간으로 표시해주죠. 운전자의 예측 운전을 도와 안전한 교통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죠.

교차로에 있는 지능형 신호제어기가 수집한 디지털 신호 정보를 도시정보센터→도로교통공단→경찰청을 거쳐 개인이 이용하는 내비게이션 플랫폼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실시간 정보를 제공해요.
강릉시는 시범 서비스를 해 본 결과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을 통해 교차로 신호 변화를 미리 알고 급가속, 꼬리물기 등의 위험 운전행위를 자제할 수 있어서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어요.
기술은 나중에 자율주행차, 대중교통 우선신호 시스템, 긴급차량 자동신호 제어 등 스마트 교통서비스의 핵심 기반으로 활용될 예정이예요. 미래 교통혁신의 밑바탕이 되는 거죠.
강릉시에서는 내년 10월 '2026년 지능형교통체계(ITS) 세계총회'가 열려요. 강릉시는 다양한 미래형 모빌리티 서비스를 국내외 방문객에게 선보이며, 세계에 한국의 첨단 ITS 인프라를 널리 알릴 계획이죠.

2023년 10월 경찰청은 '황색신호 딜레마존' 문제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정부시 1곳, 충남 천안시 2곳, 대구 달성군 1곳 등 전국 4곳에서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 보조장치를 시범 운영했어요. 반년 이상 운영해 본 후 내린 결론은 기대와는 정반대인 '부적합'이었어요.
장치 설치 이후 오히려 사고 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한 거죠.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제공에 따른 운전자의 교차로 운행 행태 분석 연구'에서는 남은 시간을 제공한 후 차량이 정지선을 지나 멈춘 비율은 제공 이전보다 약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남은 시간을 본 운전자들이 신호위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급정거를 시도하다가 정지선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예요. 신호 남은 시간 표시장치가 오히려 운전자들의 급정거, 정지선 위반을 유발해 사고 위험을 높였다는 평가죠.
녹색신호에서 황색·적색신호로 넘어갈 때 급가속하는 차량이 증가했다는 결론도 나왔어요. 애초 녹색신호가 얼마 남지 않았을 경우 정지선 앞에 천천히 서도록 유도하는 게 목적이었지만 정반대로 자동차는 더 빠른 속도로 교차로를 건너려고 과속을 하게 된다는 거죠. 일부 오토바이 운전자는 적색신호가 2~3초 남았을 때 녹색신호로 바뀔 것을 예측해 미리 출발하기도 했다는군요.
그렇다고 나쁜 결과만 있었던 건 아니예요. 신호 위반율은 남은 시간 알림 이전과 비교해 약 37%가 감소했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어요. 연구팀은 “신호 준수율 향상에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지만, 정지선 통과 속도가 설치 후 오히려 증가했다”며 교통안전에 부정적 효과가 많았다고 지적했어요.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든 경찰청은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해석하고 시범운영을 한 뒤 정식 도입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경찰은 조만간 지방자치단체 4곳에 남은 시간 알림장치 철거를 요구할 계획이예요.
이름은 다르지만 여러 나라에서 스마트 교통 인프라의 일환으로 도입돼 서비스되고 있어요.
◇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실시간 신호 제어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차량 흐름에 따라 신호 주기를 자동으로 조정하고, 일부 내비게이션 앱과 연동해 정보를 제공합니다.
◇ 미국 피닉스
교차로에 설치된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차량 흐름을 감지하고, 신호등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긴급차량이 접근하면 신호를 조정해 우선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 미국 피츠버그
AI 기반의 스마트 신호등을 도입해 교차로 혼잡을 실시간 분석하고, 신호 주기를 조정해요. 일부 지역에서 정체 시간 25% 감소, 배출가스 20% 감소 효과가 있었어요.
◇ 독일 함부르크
차량과 교통 신호 간 통신(V2I, Vehicle-to-Infrastructure)을 통해 운전자에게 신호 변경까지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한 바 있어요.
◇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마트 시티 전략의 일환으로 실시간 교통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신호등을 조절하고, 대중교통 우선 신호 시스템도 운영 중이에요. 이로 인해 버스 정시율이 크게 향상되었죠.
◇ 중국 항저우
알리바바와 협력해 AI 기반의 도시 교통 제어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실시간 교통 상황을 분석해 신호를 조정하고, 교통 체증을 15% 이상 줄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 일본 시즈오카
AI와 레이더 센서를 활용해 교차로별로 자율적으로 신호를 조정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예요. 평균 통과시간 15~20% 단축, CO₂ 배출 감소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죠.
◇ 네덜란드
자전거 이용자까지 포함한 스마트 신호 시스템을 도입해, 교차로에서 대기 시간을 줄이고 교통 흐름을 개선하고 있어요.
◇ 싱가포르
도시 전역에 사물인터넷(IoT) 기반 교통센서를 설치해 실시간 교통량과 신호 상태를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호 주기를 자동 조정합니다. 내비게이션 앱과도 연동되어 운전자에게 신호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요.
◇ 홍콩
실시간 적응형 신호 시스템(RTATSS)이라는 이름으로 2021년부터 교차로에 센서를 설치해 보행자와 차량 흐름을 실시간 감지하고, 녹색 신호 시간을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을 시범 운영했어요. 차량 지연 시간이 5~10% 감소했고, 보행자 대기 시간도 줄어들었어요.
실시간 신호정보 제공 시스템은 단순히 '신호등을 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운전자와 도시 전체에 다음과 같은 다방면의 이점을 제공합니다.
◇ 교통 흐름 개선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호 주기를 조정하거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불필요한 정차를 줄이고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합니다.
◇ 운전자 스트레스 감소
신호 변경까지 남은 시간을 알 수 있으면, 급정거나 불필요한 가속을 줄일 수 있어요. 이는 운전자의 심리적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 연료 절감 및 탄소 배출 감소
차량이 덜 정차하고 더 효율적으로 주행하면, 연료 소비가 줄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감소합니다. 환경 보호에도 기여하는 셈이죠.
◇ 사고 위험 감소
예측 가능한 신호 변화는 급정거나 교차로 충돌 가능성을 줄여줍니다. 특히 낯선 지역이나 복잡한 교차로에서 유용해요.
◇ 긴급차량 및 대중교통 우선 통행 가능
일부 시스템은 구급차나 버스가 접근할 때 신호를 조정해 우선 통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 도시 교통 운영 효율성 향상
교통 당국은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혼잡 구간을 파악하고, 사고나 공사 등 돌발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요.
실시간 신호정보 제공 시스템이 항상 장점만 제공하는 것은 아니예요. 기대와는 다르게 생각하지 못한 단점도 제공하죠.
◇ 급가속 및 급정거 증가
운전자들이 잔여시간을 보고 “지금 지나야겠다”는 판단을 하면서 신호 변경 직전에 급가속하거나, 반대로 급정거하는 사례가 늘었어요. 이로 인해 정지선 위반이나 추돌사고 위험이 증가했습니다.
◇ 정지선 위반 40% 증가
한국도로교통공단의 연구에 따르면, 잔여시간 표시 장치를 설치한 후 정지선을 넘은 차량 비율이 약 40% 증가했다고 해요. 운전자들이 신호위반 단속을 피하려다 오히려 정지선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입니다.
◇ 보행자 안전 위협
일부 교차로에서는 보행 신호가 켜졌음에도 차량이 통과하거나, 오토바이가 빨간불 전에 출발하는 등 보행자 사고 위험이 커졌다는 현장 목격도 있었어요.
◇ 차량 간 속도 편차 확대
잔여시간을 보고 반응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보니, 앞차는 멈추고 뒷차는 가속하는 등 속도 차이가 커져 추돌사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부작용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운전자 심리와 행동 패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설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잔여시간을 숫자로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예측형 AI 기반 시스템이나 시각적·청각적 보조 방식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해요.
실시간 신호정보 시스템의 부작용을 경험한 건 한국만이 아니에요. 해외 도시들도 유사한 문제를 겪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몇 가지 대표적인 대응 사례를 소개할게요.

◇ 미국 피츠버그 'AI 기반 예측형 신호 시스템'
- 문제 : 단순한 잔여시간 표시가 운전자 행동을 예측하지 못해 사고 위험 증가.
- 해결 : 피츠버그는 AI가 교차로의 실시간 교통 흐름을 분석해 신호 주기를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 특징 : 잔여시간을 숫자로 보여주기보다는, 운전자 행동을 예측해 신호를 부드럽게 전환함으로써 급가속·급정거를 줄였어요.
◇ 싱가포르 'V2I 기반 차량-인프라 통신'
- 문제 : 시각적 잔여시간 표시가 오히려 운전자 혼란을 유발.
- 해결 : 싱가포르는 차량과 신호등이 직접 통신하는 V2I(Vehicle-to-Infrastructure) 기술을 활용해, 운전자에게 음성 또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통해 부드럽게 안내해요.
- 장점 : 시각적 혼란 없이, 운전자가 미리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유도해 사고 위험을 줄였어요.
◇ 일본 시즈오카 '분산형 AI 신호 제어'
- 문제 : 중앙 집중형 시스템의 반응 속도 한계.
- 해결 : 각 교차로에 AI를 탑재해 현장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신호를 조정하는 분산형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 효과 : 보행자 감지 기능도 포함되어 있어, 차량뿐 아니라 보행자 안전도 함께 고려합니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각 대신 예측형 안내'
- 문제 : 잔여시간 숫자 표시가 오히려 운전자 판단을 흐림.
- 해결 : 바르셀로나는 AI가 예측한 신호 전환 시점에 맞춰 내비게이션이 속도 조절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어요.
- 특징 : 운전자에게 직접 숫자를 보여주지 않고, 시스템이 알아서 속도 조절을 유도해 심리적 압박을 줄이는 방식이에요.
이처럼 단순히 '잔여시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 '행동을 예측하고 부드럽게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술만으로는 부족해요. 운전자 교육, 신호 위반 단속, 보행자 보호 캠페인이 병행되어야 효과가 극대화될 겁니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문화와 제도 속에 적용하느냐가 교통 안전의 성패를 좌우해요.
우리나라도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서, 시민 참여와 교통문화 개선까지 함께 고민한다면 훨씬 더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겠죠. 해외 사례를 참고해 기술 도입과 함께 운전자 교육, 교차로 설계 개선, AI 연동 등을 함께 고려하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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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핫픽-'신호등 남은 시간 표시' 득일까 실일까
최정훈 기자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