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수천만개 분자 중 딱맞는 약물 한번에 찾는 기술 개발

포스텍(POSTECH)은 임현석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단 한번의 실험으로 수천만개 분자 중 딱 맞는 약물을 찾아내는 기술을 했어요.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 과학자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 쓰는 비유라고해요. 수백만 수천만 후보물질 가운데 질병치료에 가장 적합한 물질을 선별해 내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의학계 과학자들은 몸속에 있는 수많은 단백질 중에서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단백질만 무력화하는 약물을 찾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요. 단백질들은 서로 모양이 비슷해서 엉뚱한 단백질에 달라붙으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정확성은 필수지요.

이번에 포스텍 연구팀이 개발한 방법은 마트에서 바코드로 상품을 구분하듯, 수천만 개의 분자 후보에 각각 다른 'DNA 바코드'를 붙여 원하는 분자만 콕 찝어 찾아낼 수 있게 하는 거죠. 이걸 두고 포스텍에서는 “신약 개발의 '미션 임파서블'을 해결했다”고 표현했군요.

연구팀은 'DNA-바코드 화합물 라이브러리(DNA-encoded library)'와 '클릭 화학(in situ click chemistry)'을 결합해 특정 단백질만 정확히 겨냥하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간단히 말하면, 수천만 개 분자에 고유의 'DNA 바코드'를 붙여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여기에 분자들이 스스로 가장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아 결합하게 하는 방식이예요.

이렇게 하면 단 한 번의 실험만으로 수천만 종의 후보 중에서 특정 단백질에 딱 맞는 약물을 찾아낼 수 있죠. 기존에는 수백 번, 수천 번 실험을 반복해야 했던 것을 한 번에 해결한 셈이예요.

이 방법으로 연구팀은 비만과 당뇨 등 대사성 질환뿐 아니라 여러 암의 원인 단백질로 알려진 'PTP1B(Protein Tyrosine Phosphatase 1B)'을 정확히 억제하는 후보 물질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이 단백질은 구조가 유사한 다른 단백질과 구별하기 어려워 그동안 선택적으로 억제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죠. 연구팀이 찾아낸 신약 후보 물질은 정상 세포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PTP1B가 과다하게 존재하는 암세포에서만 강력한 항암 효과를 나타냈다는군요.

DNA-암호화 라이브러리 기술과 '클릭 화학'을 활용해 탈인산화효소(PTP1B)에 뛰어난 선택성과 강력한 활성을 갖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 시스템 이미지
DNA-암호화 라이브러리 기술과 '클릭 화학'을 활용해 탈인산화효소(PTP1B)에 뛰어난 선택성과 강력한 활성을 갖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 시스템 이미지

논문1저자인 포스텍 화학과 박사과정 김민경 씨는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단 한 번의 스크리닝만으로 특정 단백질에 대해 높은 선택성과 강력한 활성을 지닌 신약 후보를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맞춤형 치료제 개발은 물론, 정밀 진단 도구 설계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번 연구의 성과는 세계적인 화학분야 권위지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 최근호에 실렸어요.

최정훈 기자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