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QR 코드는 스마트폰 카메라만 있으면 쉽게 읽을 수 있죠.
그렇다면 전자현미경이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 QR 코드가 있다면 어떨까요?
상상처럼 들리지만, 이 질문에 실제 답을 내놓은 연구가 최근 등장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공립 공과대학 TU Wien 연구팀은 장기 데이터 저장 기술 기업 세라바이트(Cerabyte)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작으면서도 실제로 판독 가능한 QR 코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성과는 공식 검증을 거쳐 기네스 세계 기록(Guinness World Records)에 등재됐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QR 코드의 크기
이번에 만들어진 QR 코드는 면적이 단 1.98제곱마이크로미터(㎛²)에 불과해요.
대부분의 박테리아보다도 작은 크기이며, 광학 현미경으로는 전혀 볼 수 없어요. 오직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으로만 구조를 확인하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성과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크기를 줄였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요즘 기술로는 마이크로미터나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닙니다.
진짜 어려운 점은, 그렇게 작은 구조가 시간이 지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여러 번 안정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유지하는 거예요.
구조가 지나치게 미세해지면 원자들이 이동하거나 퍼지면서, 처음에 새겨 놓은 정보가 서서히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핵심은 재료, '얇은 세라믹 박막'
연구팀이 선택한 해답은 얇은 세라믹 박막(thin ceramic film)이었습니다.
이 재료는 고성능 절삭 공구의 코팅에도 쓰일 만큼, 극한 환경에서도 매우 안정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바로 이 안정성이 초미세 QR 코드가 오랜 시간 형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QR 코드는 집속 이온 빔(focused ion beam) 기술을 이용해 세라믹 박막 위에 새겨졌습니다. 한 칸, 한 칸에 해당하는 개별 픽셀 크기는 49나노미터(nm)로, 가시광선 파장의 약 10분의 1 수준이에요.
이 때문에 눈이나 일반 현미경으로는 세부 구조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에만 QR 코드의 패턴이 흐트러짐 없이 또렷하게 드러나죠.

'작은 QR 코드'가 중요한 진짜 이유
이 기록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네스 기록 그 자체보다, 미래의 데이터 저장 방식에 있어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자기식·전자식 저장 장치는 보통 수년에서 수십 년의 수명을 가집니다. 지속적인 전력 공급, 냉각, 그리고 주기적인 데이터 이전이 필요하죠.
반면 세라믹 박막에 기록된 정보는 에너지 없이도 유지되며, 이론적으로는 수백 년에서 수천 년까지 보존될 수 있어요. 연구진에 따르면, A4 용지 한 장 면적에 2테라바이트(TB) 이상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지속성은 오히려 커진 셈이죠.
돌에 새긴 기록에서, 세라믹에 새긴 데이터로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비유를 듭니다. 고대 문명은 중요한 정보를 돌에 새겼고,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죠.
세라믹 기반 데이터 저장은 이와 비슷한 접근입니다. 화학적으로 안정적인 재료에 정보를 물리적으로 기록해, 먼 미래의 세대도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에요.
이번 세계 기록은 빈 대학교의 독립적인 검증을 거쳐 공식적으로 인정됐는데요. 연구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어요.
더 다양한 재료와 더 빠른 기록 속도, QR 코드를 넘어서는 복잡한 데이터 구조까지 세라믹 박막에 저장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 중이에요.

아주 작은 코드가 여는 큰 변화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초미세 QR 코드는 지금 당장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기술은 아니지만, 중요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작은 공간에도 정보를 오래도록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기술의 핵심이죠.
이번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QR 코드'를 만든 성과를 넘어, 미래 데이터 저장 방식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앞으로 이런 기술은 더 다양한 재료와 구조로 발전해 우리의 정보를 더욱 오래, 더욱 안전하게 지켜줄 겁니다.
최성훈 기자 csh87@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