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칭이 존재해요.
사람처럼 몸의 왼쪽과 오른쪽이 나뉜 생물부터 불가사리처럼 중심을 기준으로 여러 방향으로 균형 있게 뻗어 있는 생물까지, 대칭은 생명체가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요.
로봇 기술도 오랫동안 자연을 본떠 발전해 왔어요.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 개처럼 네 다리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생물의 형태와 움직임을 따라가는 방식이 주를 이뤘어요.
그런데 최근 로봇 설계의 기본 생각을 바꾸는 새로운 로봇이 등장했어요. 바로 성게를 닮은 전방향 로봇 '아르거스(Argus)'예요.
아르거스는 앞과 뒤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20개의 다리와 20개의 카메라를 몸 전체에 배치해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로봇은 왜 앞과 뒤가 필요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로봇은 앞뒤 방향이 정해져 있어요.
자동차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앞쪽 이동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뒤로 움직일 때는 별도의 조작이 필요해요.
걷는 로봇은 몸의 방향을 바꾼 뒤 이동해야 하고, 드론 역시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자세를 조절해야 해요.
이런 구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죠. 많은 생명체가 좌우 대칭 구조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에요.
듀크대학교 연구진은 기존의 생각을 다시 살펴봤어요.
연구진은 로봇의 대칭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겉모습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에 있다고 봤어요.

외형이 아닌 움직임의 대칭을 연구하다
연구진이 새롭게 제시한 개념은 동적 대칭(dynamic symmetry)이에요.
기존에는 로봇의 대칭성을 몸체 구조 중심으로 판단했어요. 다리가 양쪽에 균형 있게 배치됐는지, 몸의 형태가 안정적인지가 중요했죠.
동적 대칭은 다른 기준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바라봐요.
로봇이 어느 방향으로든 같은 수준의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거예요.
연구진은 이를 측정하기 위해 동적 등방성(dynamic isotropy)이라는 기준을 만들었어요.
동적 등방성은 로봇의 중심점이 모든 방향으로 얼마나 균일하게 가속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예요.
쉽게 말하면 이런 질문이에요.
“이 로봇은 앞으로 가는 것처럼 옆으로도 쉽게 움직일 수 있을까?”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과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비슷하게 가능할까?”
연구진은 움직임의 방향성이 균일할수록 로봇은 더 민첩하고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봤어요.
1,500개 이상의 로봇 구조를 비교하다
연구진은 최적의 구조를 찾기 위해 1,500개가 넘는 다양한 로봇 형태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어요.
다리의 개수와 배치, 움직임 방식 등을 바꿔가며 어떤 구조가 가장 높은 동적 대칭성을 가질 수 있는지 비교한 거예요.
그 결과 탄생한 로봇이 바로 아르거스랍니다.
아르거스는 일반적인 로봇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죠.
중앙의 둥근 몸체에서 20개의 신축형 다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오는 구조예요. 각각의 다리는 12개의 오각형 면으로 이루어진 정십이면체 구조의 꼭짓점 위치에 배치돼 힘이 고르게 분산되도록 설계됐어요.
덕분에 아르거스는 이동하기 위해 먼저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어요.
어떤 방향이든 현재 위치에서 바로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어요.

20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로봇
아르거스의 또 다른 특징은 '보는 방식'이에요.
일반적인 로봇은 보통 머리 부분이나 특정 위치에 카메라를 설치해요. 사람이 눈으로 앞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죠.
아르거스는 20개의 다리 끝에 각각 깊이 카메라(depth camera)를 장착하고 있어요. 마치 로봇 전체가 눈을 가진 것처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예요.
연구진은 이를 전신 인식(whole-body perception)이라고 설명해요.
특정 방향을 바라보지 않아도 몸 곳곳의 카메라가 주변 환경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어요.
아르거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앞'과 '뒤'의 구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다양한 환경에서 보여준 놀라운 움직임
아르거스는 실제 실험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어요.
연구진은 대학 캠퍼스와 모래 지형, 숲길 등 다양한 환경에서 로봇을 테스트했어요.
아르거스는 콘크리트, 잔디, 모래, 젖은 지면, 나무껍질 등 여러 표면 위를 이동했고, 장애물이 있는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움직였어요.
또 이동 중 밀리거나 충돌해도 빠르게 자세를 회복했죠.
일부 부품이 손상된 상태에서도 움직임을 유지했는데요. 실제 실험에서는 다리 3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동할 수 있었어요.
약 4.5㎏의 물체를 운반할 수 있었고, 90㎝가 넘는 크기의 물체를 밀면서 이동하는 작업도 수행했어요.
좁은 벽 사이에서는 여러 다리를 번갈아 사용해 수직 방향으로 올라가는 능력도 보여줬어요.

미래 로봇의 새로운 설계 방향 제시
아르거스는 당장 상용화되는 완성형 로봇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로봇이 가진 의미는 분명해요. 로봇은 반드시 사람이나 동물을 닮아야 한다는 기존 설계에서 벗어나, 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더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연구진은 아르거스를 '존재 증명(existence proof)'이라고 설명해요.
새로운 설계 원리가 실제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적 결과라는 의미예요.
앞으로 동적 대칭 개념은 다양한 로봇 개발에 활용될 수 있어요.
재난 현장에서 장애물을 피해 움직이는 구조 로봇, 달과 화성처럼 방향 전환이 어려운 환경을 탐사하는 우주 로봇, 복잡한 지형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자율 로봇 등이 대표적인 활용 분야예요.
앞으로의 로봇은 어떤 모습인지보다,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지도 몰라요.
최성훈 기자 csh87@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