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깜빡하나 했더니”…한국뇌연구원, 세계 최초 '단기기억' 오류 비밀 풀었다

“기억은 처음부터 잘못 입력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는 걸까?”

내 기억이 맞다고,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틀린 경우가 있어요. 그때는 참 황당하죠. “내가 틀릴 리가 없는데…내가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기억이 처음부터 잘못 입력된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동안 뇌 신호가 엉뚱한 방향으로 흔들리면서 오류가 생긴다는 사실을 우리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밝혔어요.

단기기억은 방금 본 정보를 일정 기간 유지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인 인지능력이예요. 이 단기기억이 흐려지면서 오류가 생기는 거죠.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이런 '단기기억의 오류'를 국내 연구진이 밝혀낸 거죠.

한국뇌연구원은 감각·운동시스템 연구그룹 라종철 박사팀이 단기기억에 오류가 발생하는 원인을 뇌 속 신경회로 차원에서 규명했다고 발표했어요.

연구팀은 “기억은 처음부터 잘못 입력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는 걸까? 그리고 잘못 입력되거나 변질되는 정보를 시간에 따른 신경활성 기반으로 디코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연구진은 생쥐를 대상으로 시각 정보를 잠시 기억했다가 올바른 방향으로 반응해야 하는 '지연일치 행동과제'를 설계해 시험했어요. 그 과정에서 이광자 칼슘 영상법(2-Photon Imaging) 등을 활용해 살아있는 생쥐의 후두정피질(PPC, 감각 정보를 모아 기억을 유지하는 핵심 영역)의 신경세포 활동을 분석했죠.

그 결과 놀라운 장면이 포착됐어요. 기억이 유지되는 동안 뇌의 후두정피질의 신경신호가 점점 정답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지 쪽으로 표류하는 현상이 관찰된 거죠. 이러한 표류는 결국 잘못된 행동의 선택 즉, 기억의 오류를 일으킨 거죠. 생쥐가 기억한 시각정보와는 전혀 다른 '오답'을 선택한 것이죠.

이는 기억이 정확히 입력됐다 하더라도 그 기억을 유지 과정에서 뇌 신호가 불안정하게 흔들릴 수 있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면 기억이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예요. 연구팀은 다양한 신경군집 분석을 통해 이 표류 현상이 행동상의 실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왼쪽부터) 최준호 선임연구원(제1저자, 교신저자), 배성원 연수연구원(제1저자), 라종철 책임연구원(교신저자)
(왼쪽부터) 최준호 선임연구원(제1저자, 교신저자), 배성원 연수연구원(제1저자), 라종철 책임연구원(교신저자)

교신저자인 라종철 책임연구원은 “이번 성과가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 단기기억 손상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경정신질환의 기초 메커니즘을 밝히고, 조기 진단기반 마련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기억오류 탐지 기술을 넘어, 뇌-기계 인터페이스(BCI) 등 첨단 신경신호 해석 기술의 발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번 연구는 한국뇌연구원 감각·운동시스템 연구그룹 최준호 선임연구원(제1저자·교신저자), 배성원 연수연구원(제1저자)이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권위있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PLoS Biology' 최신호에 게재됐어요.

최정훈 기자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