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전수경 작가가 첫 동화집 〈허수의 정체〉를 펴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을 법한 '표선초등학교 6학년 2반' 아이들의 이야기 여덟 편을 엮었습니다. 평범한 신도시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품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이죠. 그들은 무회전 킥에 집요하게 도전하고,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정체불명의 전학생 정체를 밝히고자 동분서주합니다.
작가는 어려운 수학 문제보다 풀기 힘든 그들의 마음을 먼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듯 빛나는 눈으로 들여다봅니다. 이 책 속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 피어난 호기심, 설렘, 용기, 후회, 불안, 상실감과 같은 생경한 감정들을 따라가는 사이, 어린이 독자는 자기 안 깊은 곳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표제작인 〈허수의 정체〉는 남다른 복장을 한 전학생 허수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부모님이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허수를 은근히 떠보는 반 아이들에게 허수는 “좀 불쾌하다. 개인정보잖아”하고 단호하게 말하죠.
어린이들이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통해 사람을 구분 짓는 시선을 답습하게 된 모습은 안타깝지만, 작가는 수수께끼 투성이인 허수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며 현실을 유쾌하게 돌파합니다.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허수와 만나 진정으로 마음을 나눈 후, 더 이상 세간의 평가나 소문은 상관 않게 됩니다.
그런데 허수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사라지고 새 친구가 전학 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전과 달리 새 전학생에게 좋아하는 운동은 무엇인지, 주말에는 뭐하고 노는지 등 시시콜콜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건넵니다. 상상의 수인 허수(虛數)와 같이, 허수의 존재가 아이들의 현실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 것이지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활짝 꽃 피게 된 표선초등학교 6학년 2반 친구들은 마지막 단편 〈우리 반 아침〉에 이르러 누구 하나 빠짐없이 주인공이 됩니다.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기쁨을 선사하는 〈허수의 정체〉 속 여덟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 독자는 '진짜 나'를 탐색하며 타인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나갈 거예요.
작가는 어린이가 다른 누군가의 바람을 그대로 따르기 이전에, 자신의 진심을 살피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지었다고 해요. 이야기 속 아이들이 멀어진 친구와의 관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을 돌이키며 할아버지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뭉클한 여운을 남깁니다.
자기 안의 내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어린이는 비로소 진정한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행간에 담겼습니다.
전수경 지음, 김규아 그림, 창비 펴냄, 1만3800원
최지호 기자 jho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