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오는 4월 15일 우리나라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추가키로 했다. 확정될 경우, 원자력과 에너지, 인공지능(AI),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제약된다. 4월 2일 '상호관세' 부과까지 이뤄지면 나라 전체에 파장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우리나라를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포함했다.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다.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 종료 직전인 지난 1월 초에 이뤄진 일이다.
민감국가 리스트가 확정되면, 우리 국민은 DOE 산하 기관과의 협력사업을 진행할 때 더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치게 된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방문만 할 경우에도 사전검토를 거쳐야 한다. 최소 45일 전까지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민감국가 국민이 아닌 경우에는 5일 전에 제출한다.
우리나라는 DOE 및 그 산하 기관과 원자력, AI, 양자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밀접한 연구 협력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번 민감국가 조치가 그대로 이어질 경우 한·미 양국간 첨단 분야 R&D 협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립에너지기술연구소(NETL)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간의 협력사업이 진행 중이며, 첨단바이오 분야에선 국립과학재단(NSF)이 주도하는 '글로벌 센터 프로그램'에는 우리 5개 연구팀이 선정돼 참여하고 있다. 연구팀은 매년 약 13억원씩 5년간 지원을 받는다. 또 첨단 배터리 분야에서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와 함께 차세대 이차전지 공동연구 중이다.
원자력 분야에선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분야 협력을 통해 핵연료 재활용,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을 해결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AI, 양자 연구 중심지인 DOE 산하 국립연구소들과 우리 연구기관 및 대학이 공동연구 및 인력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더 큰 문제는 안보 리스크다.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또다시 '핵보유국'으로 지칭했는데,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과의 원자력 협력을 제약하는 모습이 연출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이는 곧 우리 안보 위협이 커진다는 의미이며,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을 키워 경제산업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DOE가 지정한 민감국가에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 미국의 적대국은 물론, 이스라엘과 대만, 인도, 우크라이나 등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도 있다. 민감국가를 핵을 보유하거나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관리가 필요한 나라를 지정하는 셈이다. 중동분쟁의 중심에 있는 이스라엘은 비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한 국가이며, 대만은 중국 침략 위협을 받는 나라다. 핵 보유국인 인도도 파키스탄과의 핵전쟁이 우려되는 나라이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있다.
외교 당국은 “리스트가 시정될 수 있도록 에너지부·국무부 등 관계기관 고위급 인사들을 지속 접촉해 적극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며 “한미 과학기술·에너지 협력에 영향이 없도록 지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