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구부러지고, 단단하고, 전기 저장도 가능한 신소재 개발

전복 껍데기에서 착안
고온에서도 성능 유지
쪽성 이온 분자구조 및 혼합 비율에 따라 나타나는 초격자 층상, 실린더 구조 및 프랭크 카스퍼 상의 전자 현미경 이미지
쪽성 이온 분자구조 및 혼합 비율에 따라 나타나는 초격자 층상, 실린더 구조 및 프랭크 카스퍼 상의 전자 현미경 이미지

포스텍(POSTECH)은 화학과 박문정 교수 연구팀이 고무처럼 유연하면서 강철처럼 단단하고, 전기까지 잘 저장하는 소재를 개발했다고 28일 밝혔어요. 이 연구는 나노재료 분야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온라인판에 게재됐어요.

우리는 스마트폰을 접어서 쓰고, 손목에 감는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구부리고 접어도 망가지지 않고, 충격에도 강한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존 소재는 유연하면 쉽게 찢어지고, 단단하면 쉽게 부러지는 한계가 있었어요. 연구팀은 자연에서 해답을 찾았어요. 전복 껍데기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소재를 개발했어요. 전복 껍데기는 수천 겹의 유-무기 얇은 층이 층층이 쌓인 구조로 강하면서도 충격을 잘 흡수해요.

이처럼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이 차곡차곡 쌓인 구조를 '초격자'라고 하죠. 하지만 이런 정교한 구조를 인공적으로 재현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층을 하나하나 쌓는 방식이라 나노미터(㎚) 크기의 정밀한 구조를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죠.

연구팀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 두 고분자를 하나로 연결한 '블록공중합체'라는 특별한 소재를 사용했어요. 여기에 양전하(+)와 음전하(-)를 동시에 가진 '양쪽성 이온'을 더해 레고 블록이 저절로 조립되듯 고분자의 경계 부분에서 독특한 질서가 부여된, 정교한 3차원 구조를 만들어 냈어요.

더 나아가 연구팀은 양쪽성 이온의 화학구조와 농도를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써 '프랭크-카스퍼(Frank-Kasper) 상'이라는 복잡한 구조까지 구현하는 데 성공했어요. 이 구조는 분자들이 입체 퍼즐처럼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배열된 형태로 일반적인 층상 구조보다 훨씬 복잡하죠.

실험 결과, 이 소재는 유전율이 25에 달해 일반 절연체보다 전기를 25배 더 잘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탄성률도 높아 단단하면서도 유연했으며, 150℃ 고온에서도 성능이 유지된 거죠. 외부 충격에도 강한 내구성을 갖췄다는군요.

박문정 포스텍 교수
박문정 포스텍 교수

박문정 교수는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만들 정교한 구조를 구현함으로써 기존 소재의 한계를 넘을 가능성을 열었다”며 ”이번 연구는 차세대 유연 전자 소재 개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글로벌리더연구사업과 나노소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어요.

최정훈 기자 jhchoi@etnews.com